법령이나 계약서는 소설이나 기사문과는 다르게 낱낱의 조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법령이나 계약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조문 또는 조항이라고들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1조, ①, 1, 가 등과 같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문번호 또는 조항번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조문 체계
기본적으로는 조(條)를 기준으로 하며, 내용을 더 세분해서 표시해야 하는 경우 항, 호, 목 순으로 표기합니다. 조문 수가 많거나 체계 구분이 필요한 경우, 같은 내용의 “조”를 묶어 “관”으로, “관”을 묶어 “절”로, “절”을 묶어 “장”으로, “장”을 묶어 “편”으로 표기합니다.
큰 구분부터 작은 구분까지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제1편 제1장 제1절 제1관 제1조 제1항 제1호 가목 |
정식으로 표기하거나 읽을 때는 앞에 “제” 자를 붙여야 하지만, “목”은 그냥 가목, 나목으로 읽습니다(차별대우?). 원래 제1조제1항제1호가목과 같이 붙여 쓰는 게 원칙이었지만 요즘에는 읽기 쉽도록 띄워서 쓰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여담(餘談)
과거에 법률 명칭은 마치 고유명사인 것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붙여 쓰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있어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따른국가및지방자치단체의재산의관리와처분에관한법률”과 같이 긴 명칭을 가진 법률은 어디서 끊어 읽어야 될지 대략 난감한 경우도 있어서 요즘은 거의 띄어쓰기를 사용하여, 읽다가 숨이 넘어가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습니다.
조・항・호・목의 표기
실제 법전을 보면 제1조, ①, 1, 가와 같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읽을 때 “제1조 제1항 제1호 가목”으로 읽는 것입니다.
“항”은 원문자인 숫자 “①”로 표기하는데, 계약서 같은 문서에서는 (1)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7조의2”와 같은 것도 등장하는데, 약식은 7-2로 표기합니다. 이런 것은 보통 7조와 8조 사이에 내용이 추가되었는데 뒷부분의 조항번호를 전부 바꾸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끼워 넣기한 것입니다.
법제처가 권장하는 영문 표기
법제처에서는 편・장・절・관을 Part I, Chapter I, Section 1, Sub-Section 1으로 표기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조・항・호는 Article 1, paragraph (1), subparagraph 1의 표기를 권장하고 있고, 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권장표현이 없었으나(차별대우?) 번역사들이 보통 item으로 많이들 표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1조 제1항 Article 1 (1)
- 제1조 제2항 제3호 가목 Article 1 (2) 3 (a)
- 법 제1조 제1호 가목 subparagraph 1 (a) of Article 1 of the Act
- 제1조 및 제3조부터 제5조까지 Articles 1 and 3 through 5
표로 한눈에 보기
편 | Part |
장 | Chapter |
절 | Section |
관 | Sub-Section |
조 | Article |
항 | paragraph |
호 | subparagraph |
목 | item |
영미법상의 조문 체계
영미법 상의 조문 체계는 우리나라와 다르고, 또 나라마다 달라서 일률적으로 정형화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나라 몇 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미국도 연방법, 주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Title (제목, 편), Chapter (장), Section (조)으로 되어 있습니다. Section 이하는 Subsection (항), Paragraph (단락, 호), Subparagraph (소단락, 목)으로 구분합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법전을 Code라고 합니다. 주 법전을 State Codes, 형법을 penal code 또는 criminal code라는 식으로 사용합니다.
영국
영국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불문법 국가이지만 의회에서 제정한 성문법률이 있습니다. 영국의 법률은 크게 Part (편), Chapter (장), Section (조), Subsection (항), Paragraph (단락, 호), Subparagraph (소단락, 목)로 나뉘고, 법률의 세부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법령은 규정(Regulation), 조항(Clause), 항목(Item) 등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영국은 법률을 Acts라고 하고, 하위 법규를 Regulation 또는 Code 등으로 표현하는데, 우리와 많이 비슷합니다. 법제처가 한영번역 기준을 정할 때 영국 시스템을 많이 참조했나 봅니다.
EU
EU는 27개 회원국들이 국가를 넘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목표로 연합한 단체로서 EU만의 자체적인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 구조는 Title (제목, 편), Chapter (장), Section (절), Article (조), Paragraph (항), Subparagraph (호), Point (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문 체계와 가장 비슷합니다. 유럽연합에 국가들이 많으니까 여러 나라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EU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담 2 ― § 기호
가끔 “§” 이런 기호가 출몰하기도 합니다. “§“는 라틴어 "signum sectionis(시그넘 섹셔니스)"의 기호로, "섹션의 기호"라는 뜻입니다. Section을 “조”로 사용하는 미국의 법률문서 및, 독일이나 일부 유럽 국가에서 법률 문서에 사용합니다. 저도 학부 시절 필기할 때 많이 썼었습니다. 아무래도 “제1조”라고 쓰는 것보다 “§”으로 그리면 시간도 절약되고요, 공간도 절약되니까요.
"§"를 사용하여 인용할 때는 약식으로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제10조제2항을 인용할 때는 "§ 10(2)" 또는 "§ 10②”, 제1조제1항제1호를 인용할 때는 "§ 1(1)1" 또는 "§ 1①1"와 같이 표기합니다.
"§§"와 같이 표기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 조항을 참조할 때 사용하는 표식입니다. 예를 들어 "§§ 10-17"는 제10조에서 제17조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로는 입력이 어려워 그냥 "Section" 또는 "s."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Section을 “절”의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EU 국가에서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Article을 “조”로, Section을 “절”로 잡고 열심히 번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Section을 “조”의 의미로 사용하는 듯한 인용이 등장한 경우, 지금껏 “절”로 번역한 것을 전부 고쳐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하여 냉수 먹고 정신 차린 뒤 처음부터 찬찬히 분석한 결과 “조”로 번역하든, “절”로 번역하든 문맥상 의미는 좀 달라지겠지만 문서의 법률적 효력과 관련해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치솟는 혈압을 방어하기 위해 뒷목 잡고 비타민 C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내 경험…)
마무리
법 조문이나 계약서에서 기본적인 단위는 “조(條)”이고 “조”를 기준으로 상하위를 구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를 Article로 번역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EU에서도 Article을 기본 단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Section을 “조”로 하는 체계를 가진 국가들도 있으므로 (호주, 캐나다도 Section을 “조”로 하고 있는 것 같음) 영한번역에서는 “조(條)”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특정하기 보다는 “조항”과 같이 각 항목들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 용어를 사용하여 만약의 위기를 미리 대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삼다.
법령이나 계약서는 소설이나 기사문과는 다르게 낱낱의 조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법령이나 계약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조문 또는 조항이라고들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1조, ①, 1, 가 등과 같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문번호 또는 조항번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조문 체계
기본적으로는 조(條)를 기준으로 하며, 내용을 더 세분해서 표시해야 하는 경우 항, 호, 목 순으로 표기합니다. 조문 수가 많거나 체계 구분이 필요한 경우, 같은 내용의 “조”를 묶어 “관”으로, “관”을 묶어 “절”로, “절”을 묶어 “장”으로, “장”을 묶어 “편”으로 표기합니다.
큰 구분부터 작은 구분까지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정식으로 표기하거나 읽을 때는 앞에 “제” 자를 붙여야 하지만, “목”은 그냥 가목, 나목으로 읽습니다(차별대우?). 원래 제1조제1항제1호가목과 같이 붙여 쓰는 게 원칙이었지만 요즘에는 읽기 쉽도록 띄워서 쓰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여담(餘談)
과거에 법률 명칭은 마치 고유명사인 것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붙여 쓰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있어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따른국가및지방자치단체의재산의관리와처분에관한법률”과 같이 긴 명칭을 가진 법률은 어디서 끊어 읽어야 될지 대략 난감한 경우도 있어서 요즘은 거의 띄어쓰기를 사용하여, 읽다가 숨이 넘어가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습니다.
조・항・호・목의 표기
실제 법전을 보면 제1조, ①, 1, 가와 같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읽을 때 “제1조 제1항 제1호 가목”으로 읽는 것입니다.
“항”은 원문자인 숫자 “①”로 표기하는데, 계약서 같은 문서에서는 (1)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7조의2”와 같은 것도 등장하는데, 약식은 7-2로 표기합니다. 이런 것은 보통 7조와 8조 사이에 내용이 추가되었는데 뒷부분의 조항번호를 전부 바꾸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끼워 넣기한 것입니다.
법제처가 권장하는 영문 표기
법제처에서는 편・장・절・관을 Part I, Chapter I, Section 1, Sub-Section 1으로 표기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조・항・호는 Article 1, paragraph (1), subparagraph 1의 표기를 권장하고 있고, 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권장표현이 없었으나(차별대우?) 번역사들이 보통 item으로 많이들 표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표로 한눈에 보기
편
Part
장
Chapter
절
Section
관
Sub-Section
조
Article
항
paragraph
호
subparagraph
목
item
영미법상의 조문 체계
영미법 상의 조문 체계는 우리나라와 다르고, 또 나라마다 달라서 일률적으로 정형화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나라 몇 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미국도 연방법, 주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Title (제목, 편), Chapter (장), Section (조)으로 되어 있습니다. Section 이하는 Subsection (항), Paragraph (단락, 호), Subparagraph (소단락, 목)으로 구분합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법전을 Code라고 합니다. 주 법전을 State Codes, 형법을 penal code 또는 criminal code라는 식으로 사용합니다.
영국
영국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불문법 국가이지만 의회에서 제정한 성문법률이 있습니다. 영국의 법률은 크게 Part (편), Chapter (장), Section (조), Subsection (항), Paragraph (단락, 호), Subparagraph (소단락, 목)로 나뉘고, 법률의 세부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법령은 규정(Regulation), 조항(Clause), 항목(Item) 등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영국은 법률을 Acts라고 하고, 하위 법규를 Regulation 또는 Code 등으로 표현하는데, 우리와 많이 비슷합니다. 법제처가 한영번역 기준을 정할 때 영국 시스템을 많이 참조했나 봅니다.
EU
EU는 27개 회원국들이 국가를 넘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목표로 연합한 단체로서 EU만의 자체적인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 구조는 Title (제목, 편), Chapter (장), Section (절), Article (조), Paragraph (항), Subparagraph (호), Point (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문 체계와 가장 비슷합니다. 유럽연합에 국가들이 많으니까 여러 나라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EU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담 2 ― § 기호
가끔 “§” 이런 기호가 출몰하기도 합니다. “§“는 라틴어 "signum sectionis(시그넘 섹셔니스)"의 기호로, "섹션의 기호"라는 뜻입니다. Section을 “조”로 사용하는 미국의 법률문서 및, 독일이나 일부 유럽 국가에서 법률 문서에 사용합니다. 저도 학부 시절 필기할 때 많이 썼었습니다. 아무래도 “제1조”라고 쓰는 것보다 “§”으로 그리면 시간도 절약되고요, 공간도 절약되니까요.
"§"를 사용하여 인용할 때는 약식으로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제10조제2항을 인용할 때는 "§ 10(2)" 또는 "§ 10②”, 제1조제1항제1호를 인용할 때는 "§ 1(1)1" 또는 "§ 1①1"와 같이 표기합니다.
"§§"와 같이 표기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 조항을 참조할 때 사용하는 표식입니다. 예를 들어 "§§ 10-17"는 제10조에서 제17조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로는 입력이 어려워 그냥 "Section" 또는 "s."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Section을 “절”의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EU 국가에서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Article을 “조”로, Section을 “절”로 잡고 열심히 번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Section을 “조”의 의미로 사용하는 듯한 인용이 등장한 경우, 지금껏 “절”로 번역한 것을 전부 고쳐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하여 냉수 먹고 정신 차린 뒤 처음부터 찬찬히 분석한 결과 “조”로 번역하든, “절”로 번역하든 문맥상 의미는 좀 달라지겠지만 문서의 법률적 효력과 관련해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치솟는 혈압을 방어하기 위해 뒷목 잡고 비타민 C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내 경험…)
마무리
법 조문이나 계약서에서 기본적인 단위는 “조(條)”이고 “조”를 기준으로 상하위를 구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를 Article로 번역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EU에서도 Article을 기본 단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Section을 “조”로 하는 체계를 가진 국가들도 있으므로 (호주, 캐나다도 Section을 “조”로 하고 있는 것 같음) 영한번역에서는 “조(條)”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특정하기 보다는 “조항”과 같이 각 항목들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 용어를 사용하여 만약의 위기를 미리 대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삼다.